출가외인

 

언제라도 다시 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뛰놀던 마당, 좁다랗고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숨어들어가기 좋았던 골방, 동네 어귀에 있는 우리 집 창문에서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던 야트막한 산자락. ‘아가’ 하고 날 부르던 높고 낮은 음성들. 흙 묻은 옷을 털지 않고 마룻바닥에 뛰어올라 날 부르던 음성들 사이로 몸을 던졌던 순간들. 마당 흙무더기 속에서 고고하게 피어나 있던 작약에게 자꾸만 시선을 던졌던 나. 영구히 지속될 것 같았던 그때의 나.

높고 낮은 그 음성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시기가 왔고 결국엔 하나둘씩 그 음성들이 사라졌다. 집 앞 탱자나무 앞에서 알싸한 내음을 맡으며 처음 소멸을 경험했다. 장례행렬은 화려했고 나는 맨 끝에서 울고 있었다. 퉁퉁 부은 눈을 자꾸만 비비며 많이 울었다. 소멸 앞에서 의연한 척은 할 수 없었다. 그땐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서툰 울음은 분명 그 낮은 음성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직감 때문이었다. 떠난 그 음성의 육신이 집 대문 밖을 그렇게 서성이는 의식을 치른 후에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단 걸 알았다.

 

나는 무엇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을까. 높고 낮은 음성들은 여기에도 있지만, 더 이상 나를 ‘아가’라고 부르는 따뜻한 그 음성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분명 소멸하지 않았지만 소멸했다. 서툰 울음을 받아줄 높고 낮은 음성들이 없어 울 수 없는 건조한 눈을 비벼보았다. 흐려진 시야가 이내 또렷해졌고 내 운명이 똑바로 보였다. 나의 정체성을.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내 운명은 정해졌다. 소속된 경험이 있는 자에게 잡을 손 하나 없다는 것은 내 존재를 부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불러오지 않는 배를 부여잡고 한껏 울어 보았다. 소멸하고도 살아있는 내가 신기하기만 했다. 소멸하고도 살아있는 나를 간신히 붙들고 다시 또 떠밀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아가’라고 부르는 높고 낮은 음성들 사이 고고하게 피어있던 작약. 지금 보고 싶은 건 그것뿐이다.

불화 / 권순지

이주

흔들리는 순간마다 꿈을 꾸듯 잠을 청했다. 자다 소스라치듯 놀라 깨는 그 반복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리듬 속에서 그래도 이쯤은 견딜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간절히 열망한 자리에서 결국엔 박탈당하기까지 불안했던 날들에 비하면 말이다. 잔인한 감정들이 치솟다가도 이내 조금씩 가라앉곤 했다.

 

실로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작은방 한 칸이지만 지친 몸을 눕힐 수 있는 곳을 꾸역꾸역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계절과 공기를 숨 쉬듯 느낄 순 없지만, 그건 약 40 발자국만 걸으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내 계절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꽤 잊어가고 있었다. 날 서고 서툴게 응집되어 맴돌던 기억들이 흩어진 것 같았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날 때마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은, 괜찮은 사람으로 그렇게 몇 겹의 나를 쌓아 올렸다.

물리적인 변화는 새롭게 꾸려야 할 삶을 위해 분주한 시간을 만들어냈다. 누구를, 무엇을, 어떤 곳을 판단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혼자였지만 외롭진 않다고 생각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곁에 누가 있든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면, 누군가 내게 돈을 벌 수 있는 자격을 준다면 해야만 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더 알 수 없게 된 날들 속에서 그래도 그 자리를 지켜야 했다. 여기가 내 자리니까.

 

성할 리 없는 몸이 발작을 일으키듯 아프곤 했다. 작은방을 뒹굴다가도 습관적으로 사력을 다해 일어나 마른세수를 하며 벽 거울을 보았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거울, 빗, 수건… 원초적인 나를 가장 손쉽게 매만지는 도구들을 확인했고, 뒤이어 발이 닿는 작은 방구석마다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침구를 정리했다. 또 뭐 빠트린 건 없을까. 매일 반복하는 일들… 희미해진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 갈라진 콘크리트 벽 틈새로 어느새 찬 기운이 올라오는 걸 보니 곧 겨울이 금방이라도 닥칠 거야. 들어줄 사람 없는 혼잣말이 나왔다. 사실은 기억나지 않을까 봐 무서웠던 거잖아. 확인하기 위한 거울엔 몇 겹의 내가 비췄다. 같이 있고 싶었던, 남아 있고 싶었던, 지키고 싶었던, 함께 했던, 행복했던 그리고 떠났던 모든 대상들이 나를 대신하여 내가 되어주었다. 내가 떠밀려온 이유이기도 한 그것들이 우습게도 나를 확인하는 전부였다. 또한 제자리에 있지 않은 내가 실제로 위험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분리된 그곳에서 멀리 떠밀려 왔음에도 여전히 내 존재가 그곳에서만 확인되는 것처럼.

불화

유난히 어둡게 느껴지는 밤, 전화를 받았다. 어렴풋이 전해지는 상대의 기운. 나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침묵. 너는 분명 다른 어떤 말을 하고 싶지만 삼키고 있었다. 나더러 얘기하라 재촉했다. 쏟아지는 질문의 무게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말하고 나면 좀 편해질까. 그런데 말이야. 나로 인해 힘들다는 너에게 내 이야기가 닿을 수 있을까. 이유를 묻는 너에게 내 이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네 마음이 어디서 다친 김에 내게 분풀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네 공격은 나의 치부였고 내 방어는 침묵이었다.

 

창피해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왜 그렇게 사는 거야 네가 그렇게 사는 게 싫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돈은 좀 모아놨겠지 돈은 왜 그렇게밖에 없어 네 빚 때문에 나까지 피해 보면 어쩔 건데.

 

소나기가 내렸다. 갑작스럽고 잠깐이지만 꽤 오래도록 젖어있을 비를 맞은 것이다. 말리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부디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내린 후 끊어진 전화. 한참 시간을 보낸 뒤에서야 가슴을 쥐고 울었다. 너에게 또 전화가 온다면 나는 받을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가 너에게 분풀이는 될 수 있을지언정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젠 알겠는데.

 

잠깐 좀 눈을 붙였을까. 다시 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받고 싶지 않아도 도망칠 수 없는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걸터앉아 화장기가 잘 남아있는지 확인했다. 옷까지 갈아입고 멎을 것 같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방문을 열었다. 오늘은 또 누굴 만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밤거리의 네온사인에 눈이 부셨다. 걸을 때마다 서서히 흩어지는 내게, 애쓰지 않아도 거부하고 있는 나에게 내가 말했다. ‘오늘도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힘들 수는 있다고, 그때까지 잘 지내라고.’

 

제법 의연하게 대답하는 나. ‘괜찮다고 다녀오라고, 다녀오면 다시 만나자고.’

발길을 재촉했다. 지금의 서글픈 나를 생각하지 말아줘. 진한 화장을 한 내가, 입은 옷을 벗을 내가 누구인지 제발 떠올리지 않길.

살고 싶어. 그게 우리가 지금 떨어져 있어야 할 이유야.

실종자

그들이 불필요하게 쏟아내는 감정들은 나를 더욱 뒤엉키게 했다. 약속된 것에서 변주된 그들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내어주기도 하고, 욕심 없이 점잖은 척하면서도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은 변덕스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만졌고 나는 그것을 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그것이었다. 친절하든 친절하지 않든 그건 그들의 자유였고,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적응해야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대가를 치렀다는 이유로 그들은 마음껏 분출했고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내밀한 곳을 침범 당했고, 그들을 받아들이느라 내 고통과는 얼마간 떨어져 있어야 했다.

 

대가로 합의된 약속을 지키는 것은 꾸준히 나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연극은 약속된 시간이 지나서도 막을 내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변덕스러운 그들은 연극 상대로 알맞지 않았다. 내가 참을 때 그들은 참지 않았고, 그저 쏟아내기만 했다. 그들은 연극을 하고 싶어 대가를 치렀고 나는 대가를 받고 연극을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뒤엉킨 시간은 쉬지 않고 지속되고 있었다. 온종일 내가 나로 돌아오지 않는 날도 있었고, 그럴 때는 숨죽여 가만히 있어야 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하는, 내가 나를 붙잡지 못할까 봐. 내가 찾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알려고 들지 않았다.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나. 버티다 못해 주저앉았다. 그토록 기다렸던 내가 돌아와 주저앉아있는 나를 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무거워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고 싶어졌다. 나도 내가 싫어져 숨어버렸다.

연소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쓸모없다고 버려진 것들이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빛을 냈다. 생의 마지막은 소란스럽기는커녕 대부분 조용했다. 불꽃만 곁에서 화려할 뿐 조용히 타들어가는 것들. 보통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구입해서 쓰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들. 그것들은 살아있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스스로를 각인시켰다. 이제야 용도 있는 것이 되었다고. 그렇게 가연물로 채택된 것들의 종말을 떠올리며 나 또한 지금 괜찮은 순간을 맞이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몇 십 바퀴의 굴레. 그 속에서 내가 과연 사람이었는지 자문한다. 수많은 다른 세계로 갈 수 없었고, 오래도록 내버려 두고 들춰보지 않았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기어이 나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묻는다. 나는 살아있었던 걸까. 박탈과 외면. 그리고 침범 당한 기억 속에서도 살고 싶어 웅크리고 버틴 날들이 다 거짓 같았다. 태어났다는 것 말고는 인정받은 적 없이 존재했던 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비명처럼 들리는 소리…

이번엔 조금 누그러진 억양으로 들리는 소리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숨으면 저 속의 시커먼 이들은 더 날뛸걸.’

 

‘숨는 게 아니라 각인이야.’

 

타는 불꽃 속에서 드디어 내가 보였다. 숨어있던 내가 보였다. 눈물 나도록 반가운 나. 이 지긋지긋한 세계와의 불화도 정말 끝이야. 소멸하고도 사라지지 않았던 나는 드디어 소멸한다.